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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공대생 시점/단상

저 퇴사합니다!

전지적 공대생 시점 2021. 3. 16. 01:25

오늘 퇴사 면담을 했다. 충동적인 퇴사였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획적인 퇴사도 아니었다. 퇴사할 만한 충분한 이유들이 많았기 때문에 충동적인 선택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체계적으로 퇴사 이후의 삶을 준비를 한 것도 아니라서 계획적이라고 할 수가 없다. 공기업 준비를 해야겠다. 천안으로 다시 내려가야겠다 이정도...? 러프한 계획만 있다.

처음 퇴사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던 것은 입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였다. 흔히 말하는 (상사와의) 인간관계 문제가 컸고, 또 한 가지로는 회사가 원하는 방향과 내가 실제로 하고 싶어 했던 업무의 결이 달랐다. 회사와 나의 가치관이 맞는지에 대한 부분도 중요하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다음에 말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최근 한 달간, 어떻게 퇴사 사유를 말하면 좋을지, 어떻게 면담을 해야 할지, 워딩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을 거듭해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너무 답답했다. 사실 면담을 한다 치면 하고 싶은 얘기는 너무 많았지만, 대외비 내용이 대부분이고 실제로 하면 안 되는 말도 많았다. 이 모든 고민의 이유는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함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 미룰 수도 없기에 '오늘은 기필코 면담 신청을 해야겠다'라고 다짐을 했다. 오늘 출근을 하는 순간부터, 아니 사실 어제 잠드는 순간부터 뭐라고 설명 못할 두려움이 몰려왔다. 직원의 입장에서도, 회사의 입장에서도 썩 좋은 대화 주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까지 회사를 그만뒀던 동료들의 퇴사 면담 후기들도 떠오르다 보니 어느새 두려움은 공포감으로 바뀌었다. 솔직히 말하면 오늘 오전 내내 업무가 잡히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온통 면담 때 어떻게 대화를 풀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것일 뿐이었다. 

'퇴사 사유'. 퇴사 면담이 길어지지 않을 만한 내용이 필요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닌 내 본심을 숨길 부분을 숨기되, 내가 진짜 퇴사를 하고자 하는 이유를 잘 설명하고 싶었다. 구글 검색하다가 찾은 어느 한 블로그의 퇴사 면담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대외적인 내 퇴사 사유는 '자기 계발'로 하기로 했다. 제일 탈이 없을 만한, 와해가 되지 않을 만한, 그리고 회사의 입장에서도 나를 더 이상 붙잡을 수 없을 만한 사유라고 생각했다. 더불어서 '집 계약 만료'까지. 이 두 이유의 조합은 좋았다. 내 퇴사 사유를 회사로 돌리지 않고, 오로지 개인적인 사유 안에서 끝낼 수 있었다. 

다행히도 이런 개인적인 부분을 잘 이해해 주셨고, 더불어서 내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서울살이'의 고충까지도 이해해주셔서 무탈하게 면담이 이어졌다. 그동안에 나의 회사생활에 대한 회고도 하셨다. 사실 이제까지 대표님과 나는 업무에 있어서 의견 차이가 많았던 편이라, 싸우기도 많이도 싸웠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대표님한테 인정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던 적이 손에 꼽는다. 어떤 것을 해도 대표님의 기대치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오히려 무기력함이 들었던 적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근데 오늘 면담할 때 대표님께서 '그동안 나한테 업무 배우면서 많이 혼나기도 하고,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그 과정들을 견뎌냄으로써 나의 업무에 대한 전투력이 높아졌고, 내가 처음에 비해서 성장했다는 부분에 대해서 인정하신다' 고 말씀하셔서 감정에 북받치기도 했었다. 그래서 오히려 떠나려고 하는 나를 붙잡지 않고, 내 미래에 대한 안녕을 빌어주시니 감사하기도 했다.

사실 오늘 이 면담이 있기 전까지, 너무 두렵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공포감까지 생겼던 상황이라 엄청 걱정을 많이 했다. 이유는 단 하나. 쉽게 못 그만두게 할 것 같은 느낌이어서. 하지만 좋지 않은 회사 사정과 이런저런 이유 덕분에(?) 운이 좋게 잘 마무리가 된 것 같아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아직 퇴사일까지 약 2달 간의 시간이 남은 상황이기 때문에, 아직 실제 서류상의 퇴사까지 거쳐야 할 단계가 더 많긴 하다. 하지만 항상 시작이 어려운 법.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상황이니, 끝까지 잘 마무리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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